학창시절, 시내에 나가려면 20~30분 넘게 완행버스를 타야 했습니다. 서점이라고 해봐야 한 군데 있었던 ‘제일서적’. 그곳에서 처음 《사랑과 영혼》이라는 책을 봤습니다. 그 시절엔 할리퀸 로맨스 소설이 유행이라 친구들과 몰래 돌려가며 보곤 했죠. 그런데 이건 달랐습니다. 표지부터 어딘가 진지했고, 안에 담긴 이야기도 단순한 사랑 얘기와는 다르게 묘한 깊이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책을 다 읽고 나서 알게 된 사실—이 작품이 영화로도 나와 있다는 것.
기억에 아직도 남습니다. 동네 비디오대여점에서 ‘사랑과 영혼’을 발견했을 때. 정말 설레는 마음으로 빌려와서 혼자 방 안에서 틀었는데, 시작부터 그 분위기에 빠져버렸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종종 생각나는 영화가 되어버렸죠.
사후 세계를 넘나든 사랑 이야기
《사랑과 영혼(Ghost)》은 1990년에 개봉했습니다. 단순한 멜로 영화로 보기엔, 그 안에 들어 있는 이야기가 너무나 풍성했죠. 사랑, 죽음, 복수, 그리고 초자연적인 요소까지 한 편의 영화에 담겨있습니다.
주인공은 뉴욕에서 함께 살아가던 연인, 샘(패트릭 스웨이지)와 몰리(데미 무어). 샘은 금융맨, 몰리는 도예가. 평범하면서도 따뜻한 커플이었죠. 그런데 어느 날, 샘이 괴한에게 갑작스럽게 피습당해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놀랍게도 그는 죽은 뒤에도 이 세상을 떠나지 못하고 ‘유령(ghost)’으로 남게 되죠.
샘은 자신이 죽게 된 데에는 뭔가 더 큰 음모가 있다는 걸 알게 되고, 가장 가까웠던 친구 칼(토니 골드윈)이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문제는 아무도 자신의 존재를 모르고, 그 어떤 말도 전할 수 없다는 것.
이때 등장하는 인물이 바로 오다 메 브라운(우피 골드버그)입니다. 처음엔 가짜 점쟁이로 등장하지만, 유일하게 샘의 목소리를 듣고 그의 존재를 느끼게 되면서 이야기는 반전으로 흘러갑니다. 샘은 오다 메의 힘을 빌려, 몰리에게 진실을 알리고자 합니다. 그리고 결국 사랑을 지켜낸 후, 눈부신 빛 속으로 떠나는 장면에서 영화는 잔잔한 울림을 남기며 끝이 납니다.
명장면은 잊히지 않는다 (배우와 연기)
이 영화가 오래도록 사랑받는 이유는 단순한 이야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패트릭 스웨이지, 데미 무어, 우피 골드버그. 세 사람의 연기 호흡은 정말 찰떡 같았고, 각자 맡은 역할에 생명력을 불어넣었습니다.
패트릭 스웨이지는 《더티댄싱》의 청춘 이미지를 넘어서, 이번 작품에서 절절하고도 따뜻한 영혼의 연기를 보여줬습니다. 사랑을 지키기 위해 죽은 뒤에도 떠나지 못하는 남자. 그 눈빛과 표정 하나하나가 정말 인상 깊었습니다.
그리고 데미 무어. 그 도자기 장면, 아직도 수많은 패러디가 나올 만큼 유명한 장면이죠. 감정이 복잡하게 얽힌 그 순간, 몰리라는 인물의 내면이 오롯이 전해졌고, 데미 무어는 그걸 너무나 잘 표현했습니다.
무엇보다 우피 골드버그. 코믹한 듯하면서도 눈물 나게 따뜻했던 그녀의 연기 덕분에 영화가 너무 무겁지 않게 흘러갔습니다. 사실상 영화의 키를 쥐고 있는 인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죠. 그녀는 이 작품으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절대 빠질 수 없는 인물, 칼 역의 토니 골드윈. 친구인 척하면서 샘을 죽게 한 인물이죠. 연기 너무 잘해서 정말 미워졌던 기억 납니다. 겉으론 젠틀해 보이지만 속은 탐욕으로 가득 찬, 그런 인물의 이중성을 아주 현실적으로 보여줬어요.
또 조연 배우들 역시 존재감이 뚜렷했습니다. 오다 메의 동생들을 연기한 아멜리아 맥퀸과 필리스 애플게이트, 몰리 주변 인물로 등장한 스티븐 루트 등은 영화 속 현실감을 높여주면서 극의 균형을 잡아줬습니다. 분량은 짧았지만, 그들이 있어 영화가 더 입체적으로 완성될 수 있었습니다.
“오 마이 러브…” 시대를 남긴 OST
이 영화를 이야기하면서 OST “Unchained Melody”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오~ 마이 러브, 마이 달링~”으로 시작하는 이 곡은 영화와 완벽하게 어우러지며 단순한 삽입곡이 아닌, 감정 자체로 느껴질 정도였죠.
음악이 흐르며 도자기를 만들던 그 장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분위기와 감정이 모든 걸 설명해주었습니다. 이 노래는 다시 빌보드 차트에 오르며 전 세계적으로 리바이벌 붐을 일으키기도 했고, 지금도 명곡으로 남아있습니다.
결론: 시간이 흘러도 바래지 않는 사랑 이야기
《사랑과 영혼》은 35년이 넘은 영화입니다. 그런데 지금 다시 봐도 전혀 촌스럽지 않고, 오히려 더 깊게 다가오는 영화죠. 사랑을 소재로 한 수많은 영화들이 있었지만, 이 영화처럼 ‘죽음을 넘어선 사랑’을 이렇게 아름답게 표현한 작품은 드뭅니다.
한때는 책으로, 그 다음은 비디오로, 그리고 지금은 스트리밍으로 다시 만날 수 있는 이 작품. 혹시 아직 못 봤다면, 오늘 저녁에 조용한 방에서 혼자 다시 한번 봐보시길 권해드립니다. 아마 보고 나면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지고, 어쩌면 살짝 눈물이 맺힐지도 모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다시 상영되고 있을, 그런 영화. 《사랑과 영혼》은 그런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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