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초반엔 영화관에는 정말 관객들이 많았었고 매진으로 원하는 시간대에 영화를 보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의 2025년과 사무 다른 풍경이었다.
당시 태극기 휘날리며의 인기는 상당했으며 개인적으로 장동건 배우를 연기좀 하는 사람이구나라고 다시 보게 된 영화였다.
줄거리 : 형제의 전장에서 ‘약속’이 부서지는 순간까지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는 2003년 유해 발굴 현장에서 시작된다. 군 유해발굴단이 한 노인에게 “발굴된 유골이 당신으로 추정된다”고 알리는 아이러니한 오프닝은 곧바로 1950년 여름으로 도약한다. 서울 남대문 인근에서 구두닦이로 생계를 잇는 형 이진태(장동건)는 동생 이진석(원빈)의 학비를 벌며, 함께 나눠 쓰는 은색 만년필에 형제의 소망을 새긴다. 6·25 전쟁이 발발하자 두 사람은 강제 징집되어 1사단에 배속되고, 낙동강 방어선을 버텨낸 뒤 인천상륙작전의 여세를 타고 북진한다. 진태는 “태극무공훈장을 받으면 동생을 제대시켜 주겠다”는 상부의 암묵적 약속을 믿고 가장 위험한 작전을 자청하며, 평양 시가지 전투에서 공적을 세워 중사로 승진한다. 하지만 반복된 살상은 그를 냉혹한 전사가 되게 만들고,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동생과의 감정선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중공군 개입으로 전선이 무너지자 서울 수복 과정에서 진태의 약혼녀 김영신(이은주)이 ‘부역’ 의심을 받다 우발적 총격으로 사망하는 비극이 벌어지고, 형제는 시위대를 막아 서다가 함께 체포된다. 어수선한 수용소에서 “적군이 다가오면 방화하라”는 명령이 떨어지고, 혼란 속에 진태는 동생이 불길 속에서 죽었다고 오인한다. 분노와 절망에 휩싸인 그는 끝내 북측 특수부대(일명 ‘깃발부대’)의 지휘관으로 재등장해 남측과 정면충돌한다. 진석은 기적적으로 살아나 형을 되찾기 위해 다시 전장으로 향하지만, 서로를 알아보지 못한 채 총부리를 겨눈다. 38선 인근 격전에서 둘은 마침내 서로의 얼굴을 확인하고 잠깐의 화해를 나누지만, 후퇴를 엄호하기 위해 진태가 기관총을 잡는 순간 형제는 다른 선택을 한다. 수십 년이 흘러 유해 발굴 현장으로 돌아온 노년의 진석은 은색 펜과 낡은 구두를 마주하며 “형, 약속 지켰어?”라고 속삭인다. 영화는 영웅서사가 아닌 형제의 오해와 희생을 통해 한국전쟁의 비극-전선의 급변, 이념 폭력, 가족의 파국-을 촘촘히 응시한다.
배우·제작진 : 장동건·원빈·이은주, 그리고 강제규의 스케일
주연 장동건은 형 이진태 역으로, 가족을 지키려는 선의가 전장의 광기로 뒤틀려 가는 과정을 물리적 액션과 감정의 크레센도로 설득한다. 원빈은 동생 이진석 역으로, 전장의 폭력 속에서도 ‘사람으로 남고자’ 하는 내적 저항을 섬세하게 그려 형제 서사의 균형추를 세운다. 이은주는 약혼녀 김영신으로 등장해, 비정상의 시대가 평범한 청춘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단 한 번의 비극으로 각인시킨다. 공형진(영만), 안길강(허중사) 등 조연진은 참호·시가지·수용소 등 각 공간의 공기를 현실감 있게 채우며, 전선이 바뀔 때마다 달라지는 병사·민간인의 표정을 통해 ‘전쟁의 일상성’을 각인시킨다. 연출은 강제규. 그는 전작 쉬리로 상업영화의 문법을 확장한 이후, 본작에서 대규모 병력·특수효과·로케이션을 결합해 한국형 전쟁 블록버스터의 문턱을 높였다. 촬영 홍경표, 음악 이동준, 편집 최경희 등 핵심 스태프는 시가전의 클로즈 퀘터와 개활지의 집단전, 그리고 ‘주방·수용소’ 같은 밀폐 공간 액션을 각기 다른 질감으로 구축한다. 제작은 강제규필름, 배급은 쇼박스. 상영시간은 버전별로 차이가 있으나 KMDb 필름 데이터 기준 약 147분으로 정리된다(개봉일 2004-02-05). 장르적으로는 「The Most Dangerous Game」 계보의 ‘인간 사냥’이 아닌, 국가의 재편 속에 찢겨 나가는 가족에 초점을 둔 정통 전쟁드라마에 가깝다.
흥행 성적과 산업적 의미: 1,174만 관객, 쇼박스 ‘천만’ 라인업의 출발점
본작은 2004년 2월 5일 개봉 이후 누적 관객 11,746,135명을 달성하며 한국영화 흥행사를 다시 썼다. 이는 당대 최고 흥행작 기록을 경신한 숫자였고, 현재도 KOBIS 역대 박스오피스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배급사 쇼박스는 이 작품을 시작으로 괴물, 도둑들, 암살, 택시운전사 등 ‘천만 클럽’ 라인업을 잇달아 배출하며 시장 리더십을 공고히 했다. 해외 시장에서도 제한 개봉·수출을 병행해 Box Office Mojo 기준 월드와이드 약 6,982만 달러를 기록, “한국형 전쟁 블록버스터의 수출 가능성”을 입증했다. 산업적으로 보면, 본작은 (1) 대규모 전쟁 연출 레퍼런스, (2) 역사·가족 서사의 결합, (3) 스튜디오급 배급 전략(스크린 확장·장기상영)의 세 축을 정립했고, 이후 한국전쟁 서사(고지전 등)와 대작 제작 시스템 전반에 장기적 영향을 남겼다. 20주년에 맞춰 리마스터·기념 상영이 재조명되며 IP의 롱테일까지 확인된 점도 특징. 요약하면 태극기 휘날리며는 흥행 ‘기록’과 더불어 한국형 대작 제작·유통의 문법을 업데이트한 이정표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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